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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첫 희생자 전무영 열사와 굴절된 역사의 거울

기사승인 2023.11.07  14: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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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보내드린 글

   

김정일 (金正一)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사업회장
4·19혁명동지회 부총재

첫 희생자 전무영 열사를 생각해 본다

김해시 한림면 출신으로서 중앙대학교 신문학과 1학년생으로 4·19혁명 때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최초의 희생자이며, 186명의 열사와 함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된 열사이다. 4·19혁명이 발생한지 올해로 63주년이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희생자들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또 그들에 대한 예우와 유족들에 대한 처우가 부족한 점이 많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금년도에 미국을 방문했다. 내가 미국을 방문한 목적은 253년 전 미국독립운동 발원지 보스턴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어서였다. 더불어 지난해 5월 18일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4.19혁명’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되도록 최종 결정한 날을 기념하고 싶어서였다.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 주청사 앞 돌로 포장된 도로에 별 표시가 있었다.

보스톤 대학살 사건의 배경은 1770년 3월 5일 보스턴 주둔 영국군 보초병들과 시민 사이에 벌어진 우발적인 충돌에 격분한 영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것이 그 발단이다. 사무엘 애덤스(미국 독립혁명 지도자)는 이 사건을 학살로 규정하고, 보스턴 시민 크리스퍼스 애턱스(미국독립의 첫 순교자)를 비롯한 5명이 피살되고 6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로 확대되자 마침내 미국 식민지민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은 불붙기 시작하였다.

   

중앙대학교 입학 전 진해고교졸업사진.
이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었다

영국 정부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폭력이 벌어지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었으나 정당한 재판을 약속한 총독의 간곡한 설득으로 사건 자체는 가라앉았다. 이 사건의 영국군 측 변호사는 뒷날 미국 초대 부대통령이자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였다. 그는 군중심리에 좌우될 수도 있었으나, 재판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어 미국 독립의 디딤돌이 되어, 4년 뒤 미국 독립혁명은 마침내 성공에 이른다. 보스톤 대학살 사건을 반추해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젊은 세대를 꼽자면 1960년대 청년세대라는 생각을 했다. 4·19혁명을 이끈 이때의 그들은 외신기자의 눈에도 “무기화 신세대“로 비쳤다. 순수한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궐기하여 186명의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끝내는 독재자를 추방하였다. 대학생 희생자 24명중 25%인 6명이 산화한 중앙대학교는 4월19일 당시 대학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최후세력’이었다.

필자는 63년 전, 4·19혁명 최후의 저항, 학살사건 현장에 있었다.

이날 오후 5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시각, 을지로 입구 네거리를 덮고 연좌 대모하면서 내무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함성이 지축을 흔드는 가운데 오후 5시 30분부터 시청 – 청계천 - 을지로2가 3면에서 총을 쏘며 조아 온 경찰특공대의 사격으로 첫 희생자(신문학과 1년 전열사 동기 김이환 박사 증언) 김해출신 전무영(신1)을 비롯한 지영헌(신2), 고광래(상3), 송규석(정2) 4명의 처참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보스턴사건을 미국 사무엘 애덤스는 학살로 규정하였듯, 필자는 이들의 죽음은 분명 ‘4·19혁명 학살’이라고 부르고 싶다. 미국은 보스턴 학살 최초 희생자 크리스퍼스 애턱스를 미국 독립의 첫 순교자로 역사적 인물로 추앙 받고 있음에 반하여 한국 첫 희생자 전무영 열사는 국가보훈부에서 4.19혁명 60주년 기념 발간한 “민주열사들을 만나다” 첫 장에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꽃들’ 편에 전무영 열사의 조카 전원일 시인이 쓴 “집안의 슬픔, 지역의 분노” 고작 3쪽(26-28)뿐이다. 우리나라도 첫 열사를 비롯하여 그 때 산화 한 열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무영 열사의 조카 전원일 시인은 (사)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에서 발행하는 2023년 사화집에서“전무영 열사,4.19혁명 최초의 희생자였다”라는 글을 통해서 4.19혁명으로 빚어진 가족의 아픔과 더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거룩하게 희생한 혁명의 열사들에 대한 추모의 글을 소상히 썼다.

특히 열사들의 후손들은 4.19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2023년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전무영 열사의 실묘가 있는 묘역(김해시 한림면 가동리493-3)에서 전 무영 열사의 종형 전석호(김해 향교 교육부장 역임)교장의 주관 하에 친족들이 모여서 유교식 전통복장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묘제축문(墓祭祝文)은 물론 추모사를 낭독해서 고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이런 전통제례로 제사를 모시는 예는 보기 드문 일이므로 국가보훈부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추가보존을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본다.

   
▲ 1960년도 세운 묘비가 낡아서 2015년도에 새로 추모비 및 묘 둘레석과 제단을 친족들이 새로 설치했다.

이진복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에게

미국에 떠나기 일주일 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인 5월 11일 대통령 비서실 이진복 정무수석에게 ‘피로 이룬 4·19혁명, 보훈부로부터 농락당했다’라는 자료와 글을 보냈다. 이진복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유신시절 9대 총선 때 투표장에 두 번 들어가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고 참지 못해 투표함 위에 걸터앉아 이의 제기하며 투표행위를 중단시켰다.’ 라고 첫 머리에 바로 나온다. 그의 정의감과 권위주의 권력에 저항심에 놀랐었고 전 박관용 국회의장의 만남을 삼고초려로 만났다는 한국판 제갈공명으로 소개되어 있다. 현재는 윤석열 정부의 초대 정무수석비서관이다.

이 수석은 253년 전 보스턴 학살사건 당시 미국인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영국 측 변호사로 뒷날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처럼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하고, 즉 ‘최후세력’의 ‘학살사건’이 재조명을 바랐다. 이 수석은 언론보도와는 달리 답신마저 없다.

   
▲ 2023년 4.19기념식을 마치고 친족들과 함께.

역사의 공과는 그대로 평가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엄연한 사실 즉 2020년에는 4·19혁명 관련 60년 전 중대신문 등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보훈부에서는 이에 대한 심사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다 대상자의 고령화에 예우와 시급성을 감안한 차원에서 김이주 발굴과장(현재 보훈심사위원실 상임위원)은 민병원 기획조정실장(1급 공무원) 과 함께 작성한 중앙대학교 29명(구속자16,입원자13)대상자 중 이미 수상한 김기섭, 안경호, 조관휘, 서현무, 홍관옥, 강우정(개명전 강화정)등 제외한 총23명포상계획(안)을 만들어 2021년4.19혁명 기념식에서 포상수여 한다고 필자와 고 은천기 미망인 이창자 여사에게 말하여 주었다. 그러나 공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는 상사는 자신의 신” 과 같이 생각하고 의심을 받게 되면 서슴없이 할복하였다<*동풍서풍 유봉영 전주문화원(1987. 4.20)>와 달리 한국은 김이주과장의 직계 부하직원 계약직 오병한 연구원(2023년 퇴직)이 서류를 조작한 것을 담당과장이 결제하여 탈락시켰다. 이 사실을 2021년 4월 13일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에 이의를 제기하자 새로 부임한 이제복 과장(현재 기획재정담당관 부이시관)은 윤석열 대통령 정부 들어 서기 직전 민원을 다시 제기하자 지난 해 3월7일 오병한, 김이주 조작 사실과 후임자 이제복이 전임자 동조 판단이 위법이었음을 필자에게 문서(공훈발굴과-1187)로 통보하여왔다. 이 사실을 지난 12월 28일부터 2회에 걸쳐 대통령 비서실에 민원으로 접수하였다, 보훈부에서는 지난 1월 12일행정수리(공훈발굴과- 310호) 답신까지 보낸 대통령 재가 문서를, 이 진복수석이 챙겨 보았으면, 역사의 오점이었던 4.19혁명의 역사를 바로 잡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 4.19혁명민주묘지 기념식에서 “피로 지킨 민주주의 사기꾼에 농락당해선 안 돼” 라고 발표하였다.

필자도 그날 4월 19일 혁명당시 주역 4.19혁명 공로자회 초대회장 전 헌정회장 유용태(법학과 3년) 정치외교학과 3학년 필자와 동명이인 김정일(金定一 교육학과 3년), 전무영 열사가 쓰러질 때 함께 한 신문학과 1학년 김이환 박사(전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혁명동지들이 지켜보는 자리인, 중앙대학교 의혈탑 앞 기념식장에서 4.19혁명기념사업회장 이름으로 헌사에서 “국가보훈부 농락(아이콘으로 결제권자였던 당시 김이주, 이제복 서기관, 현직 김동현 서기관 계약직으로 전 오병한 연구원, 공무직으로 조철행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부로 2023년 전출), 김미영 학예연구관 이름까지 거명하고 구체적 사실을 적시 발표하였다. 발표 한 내용을 또한 100여 쪽에 걸쳐 ”피로 이룬 4.19혁명 국가보훈부로 농락 당했다”를 발간, 대통령 비서실(이진복 정무관)을 비롯하여 국무총리실, 법무부, 감사원, 국가권익위원회, 제출했다 현재까지도 답이 없다. 이는 3년 전, 2020년 4월 6일 김이주 담당과장(현재 보훈심사원실 상임위원)이 ‘발굴계획안’을 직접 작성하고 2021년 4.19 기념식에서 포상하기로 하였는데 부하직원 계약직 오병한 연구원(2023년 퇴직)이 그 계획안을 필자가 작성 한 것으로 조작하여 탈락시켰다. 그 뒤 조작 원 책임자 김 과장은 바로 부이사관으로 승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단장으로 있다. 바로 국가보훈부 승격 후, 새롭게 만든 공적심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상훈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러면 필자는 물론, 김이주과장이 직접 계획수립 중대동문 들도 당연히 소급하여 4.19혁명 유공 포상을 실시해야 한다.

필자에게 불법으로 탈락시킨 그날 2020년 4월 6일 11시 30분 민병원 기획조정실장 사무실을 찾아 갔다. 이유는 전년(2019년)도 필자는 김창수 총장지원으로 중대 신문을 발굴하여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았고, “월간 순국”(2020년. 4월호)에 17면(61-76)에 걸쳐 “4.19혁명 최후 세력 미 발굴사료 60년 만에 찾았다” 언론에 소개되자 보훈부로 연락이 와 민병원 기획조정관리실장(1급) 사무실로 들어가자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당시 신문을 비롯하여 증빙자료를 민 실장에게 전하자 김이주 과장을 불러 금년 4.19혁명 관련 추가 포상계획을 작년(2019년 40명 포상) 3.15의거 관련 마산경찰서 “형사 사건부” 발굴 때처럼 29명 전원을 2021년도 4.19혁명 기념식에 준다고 필자에게 90도로 인사까지 했다. 김 담당과장이 직접 작성한 2020년 추가발굴계획안을 이것 역시 계약직 오 연구원이 필자(민원인)가 만든 것으로 조작(2020.4.27. 공훈발굴과-2495)하여 탈락시킨 최종(전결) 결제자한 김 부이사관은 소급하여 응분의 책임을 벗어 날 수 없다.

   
▲ 좌로부터 유용태 전 헌정회 회, 박상규 중앙대학교총장, 김정일 4.19혁명기념사업회장, 신현국 중앙대 학교 총동문회장.

4.19혁명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대한민국 자유와 정의를 바로 세웠던 4.19혁명 그 숭고한 정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였을 때, 학생들이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보여 준 위대한 역사“라며 세계사적으로 혁명사에 보존 기억해야 할 가치로 인정받았다.

이제 3.15부정 선거를 능가하는 범법자(책임자인 일반직 공무원 국정농단자)를 발본색원(拔本塞源) 소급하여 응분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먼저 작년 12월 28일에 윤석열 대통령께 보낸 민원문서가 보훈부에 지난 1월 12일 행정수리 한 2020년 추가발굴계획에 올렸던 23명과 2023년 “피로 이룬 4.19혁명 국가보훈부로 농락당했다” 첨부물로 올린 4.19혁명 건국 포장증 17인은 보훈부에서 현재까지 4.19혁명유공자 포상을 수여하지 않고 방치이유를 되짚어 챙겨 바로 수여함이 급선무이다.

4.19혁명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계승해야 될 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선진문화국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정신이요,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들이 가져야 될 책무이기도 하다.

조순동 기자 ko-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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